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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생명공학과

바이오산업동향

거대 분자 그릇, '분자 주령구' 탄생
등록일
2020-11-04
작성자
의생명공학과
조회수
136

신라시대 귀족들은 안압지에 모여 ‘주령구’라는 주사위를 굴리며 유희를 즐겼다고 한다. 국내 연구진이 전통 놀이기구인 주령구의 독특한 형태를 모방한 분자 그릇을 개발했다.

김기문 기초과학연구원(IBS) 복잡계 자기조립 연구단장(포스텍 화학과 교수) 연구팀은 분자의 자기조립 특성을 활용해 속이 빈 육팔면체 모양의 거대분자를 합성했다. 크기는 5.3nm로 지금까지 보고된 수많은 분자 다면체 중 가장 크다.

분자 다면체는 레고 블록 같은 여러 개 분자가 결합하여 이룬다. 특히 속이 빈 분자 다면체는 약물을 내부에 저장 및 전달하는 약물 운반체, 광촉매 등 다양한 응용이 가능하다. 지금까지 개발된 대부분 분자 다면체는 크기가 2nm 이하였다. 보통 약물은 2nm, 항체는 5nm 크기에 달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내부에 담을 수 있는 분자가 제한적이었던 것이다.

IBS 복잡계 자기조립 연구단은 2015년 6개의 사각형 포피린(Porphyrin) 분자와 8개의 삼각형 포피린 분자가 스스로 조립하여 만드는 다면체 ‘포피린 박스(P6L8)’를 합성한 바 있다. 이때 합성한 포피린 박스의 크기는 약 3nm였다. 이번 연구에서는 기존보다 지름이 1.8배 큰 스스로 조립되는 분자 다면체를 합성했다.

연구진은 주령구의 독특한 모양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우선, 주령구의 형태를 재현하기 위해 구성 분자의 길이와 각도를 정밀하게 설계했다. 이후 분자의 자기조립 특성을 활용해 12개의 사각형 포피린 분자와 24개의 굽은 막대기형 분자로 구성된 ‘분자 주령구(P12L24)’를 합성했다.

공동 제1저자인 구재형 연구원은 “거푸집을 만들고, 분자 조각들을 꿰맞추는 등 복잡한 단계가 필요했던 기존 합성법과 달리, 분자들이 스스로 조립되는 특성을 활용해 간단하게 제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포항 방사광가속기를 이용해 분자 다면체의 정확한 구조를 분석했다. 그 결과, 분자 주령구가 단백질에 버금가는 거대한 크기이며, 속이 빈 육팔면체 구조임을 원자 수준에서 파악할 수 있었다.

이어 광촉매로서의 활용 가능성도 확인했다. 빛을 쬐면 전자를 내어주는 포피린의 특성을 이용해 화합물을 호두나무의 뿌리에서 방출되는 천연물질인 주글론으로 변환시켰다. 또, 약물 운반체로서의 가능성도 입증했다. 합성된 분자 주령구 내부에 막대기처럼 긴 전도성 분자를 담았다. 전도성 분자의 크기는 4nm로 지금까지 이 정도 크기의 분자를 케이지 내부에 담은 시도는 없었다.

김기문 단장은 “자연과 우리가 사는 세계는 화학자에게 새로운 물질을 설계하기 위한 영감과 아이디어를 주는 공간”이라며 “분자 주령구는 내부 커다란 공간을 활용해 다양한 응용을 기대할 수 있는 만큼, 생물학적 응용에 필요한 안정성 확보 연구를 추가로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연구결과는 국제학술지 켐(Chem, IF 19.687) 10월 28일자(한국시간) 온라인 판에 게재됐다.

논문명/저널
Gigantic Porphyrinic Cages / Chem
저자정보
Jaehyoung Koo, Ikjin Kim, Younghoon Kim, Dasol Cho, In-Chul Hwang, Rahul Dev Mukhopadhyay, Hayoung Song, Young Ho Ko, Avinash Dhamija, Hochan Lee, Wooseup Hwang, Seungha Kim, Mu-Hyun Baik, and Kimoon Kim

기타사항

[연구 배경] 육팔면체 주사위인 ‘주령구’라는 문화재의 독특한 모양에 착안하여 분자적 차원에서 이러한 다면체를 합성 및 연구하고자 하였다. 어느 정도의 크기를 가지면서 빈 공간을 지닌 다면체를 합성한다면, 바이러스처럼 내부에 인슐린과 같은 약물을 저장하고 전달하는 등의 생물학적인 응용이 가능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연구를 시작했다.
[연구 과정] 먼저, 육팔면체의 분자 다면체를 만들기 위해서, 구성 분자들의 길이와 각도 등을 정밀하게 디자인했다. 이들 간의 자기조립을 통해 육팔면체의 다면체를 성공적으로 합성했고, 엑스선 회절을 이용하여 거대한 크기의 다면체의 구조를 원자 단위로 정확하게 밝혀냈다. 분자형 다면체 내부의 빈 공간을 활용하기 위해, 다면체 분자 내부에 막대기형 분자를 가둘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어려웠던 점] 구성 분자들의 디자인 및 합성 과정이 힘들었다. 여러 구성 분자들이 모여 하나의 분자형 다면체가 될 때, 길이가 맞지 않거나 조금의 각도만 틀어져도 그 합성이 매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또한, 얻어진 물질은 전자밀도가 낮은 원소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엑스선 회절법을 이용하여 그 구조를 밝혀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성과 차별점] 자기조립을 통해 거대한 다면체를 합성하는 것은 바이러스나 단백질의 구조가 합성되는 원리를 탐구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점에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분야이다. 하지만, 여전히 큰 크기의 거대 다면체를 합성하는 것은 상당히 도전적인 일이었고 그로 인해 응용연구에 한계가 있었다. 본 연구에서 우리 연구팀은 단백질에 버금가는 거대한 크기의 분자형 다면체를 합성해냈고, 이의 빈 공간을 활용해 생명 현상과 관련이 있는 응용연구를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향후 연구계획] 분자형 다면체 내부의 빈 공간을 활용하기 위해 생화학적인 응용연구를 진행 중이다. 상대적으로 안정성이 떨어지는 단백질이나 효소를 구조체 내부에 가두고, 이들의 활성도를 조절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더불어 조금 더 복잡하고 크기가 큰 다면체의 합성에 대한 연구도 계획하고 있다.


속이 빈 캡슐 형태의 분자 합성
[그림 1] 속이 빈 캡슐 형태의 분자 합성
자기조립 현상을 이용해 여러 스텝의 복잡한 합성과정 없이 한 번에 커다란 캡슐형태의 분자를 합성했다. 거대한 캡슐 유기분자를 합성을 위해선 분자가 쉽게 구형을 이룰 수 있도록 내부 틀을 먼저 만들고, 그 위에 분자조각들을 껴 맞추는(주형 보조 합성법‧거푸집에 쇳물을 부어 금속제품을 만드는 과정과 유사) 방식을 많이 사용한다. 연구진은 주형 없이 간단하게 거대 유기 케이지를 합성하는데 성공했다.

방사광가속기로 분석한 ‘분자 주령구’의 구조
[그림 2] 방사광가속기로 분석한 ‘분자 주령구’의 구조
연구진은 포항 방사광가속기에서 진행된 엑스선 회절(X-ray diffraction) 실험을 통해 분자 주령구의 구조를 원자 수준에서 분석했다. 합성된 분자 주령구의 크기는 5.3nm로 현재까지 보고된 캡슐 모양 분자들 중에서 가장 큰 크기를 기록했다.

빛을 이용한 촉매 반응 확인
[그림 3] 빛을 이용한 촉매 반응 확인
빛을 받아 일중항산소를 발생시키는 광촉매로서의 특성을 확인했다. 포피린 분자는 빛에 의해 활성화되는 특성이 있는데, ‘분자 주령구’의 커다란 기공이 물질의 확산과 이동을 자유롭게 해 촉매성도가 기존보다 높아짐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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